“기도하자 ” 장 기려 부산모임 73년 2월호
성경이 영혼의 양식이라면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양식은 3-4주간 먹지 못하고 사는 일이 있으나 호흡은 몇 시간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만치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과 대화가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과의 교통으로 살 때에 사람답게 곧 하나님의 아들답게 산다. 이와 같이 기도의 생활로 일관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리신 이는 우리 주님이시다. 그는 설교하실 때, 병을 낫게 하실 때, 틈 나실 때, 십자가를 지실 때 까지 항상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기도를 간절히 하라고 권하셨다 (눅 18:1-8). 또 비유로 가르치시기를 자기을 의롭다고 믿는 바리새인의 기도는 듣지 아니하시고 세리와 같이 자기의 죄를 고백하며 자기를 낮추는 자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하셨다.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흘려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또 환난이 제자들에게 임할 것을 내다 보시고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셨다 (눅 21:36). 바울 선생도 무시로 성령안에서 기도하고(엡6:18), 기도를 항상 힘쓰고 (골4:2), 쉬지말고 기도하라(살전5:17)라고 자기의 체험을 통하여 간절히 권했다.
나는 오늘 여기에서는 야고보서 5:13-18에 있는 말씀을 생각하고저 한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 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 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르므로 저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함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 즉 하늘이 비를 주고 열매를 내었느니라.” 나는 이 말씀을 읽고 나의 체험을 통하여 이해하고 있는 것을 써서 비판을 받고저 한다. 위의 말씀을 네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곧
1) 고난 당하는 자의 기도, 2) 병든 자를 위한 기도, 3) 믿음의 기도, 4) 의인의 기도
1) 고난 당하는 자의 기도
인생은 존속을 위한 고난을 당한다. 소위 인생고를 면할 수 없다. 사람이 육과 마음 (정신) 또는 혼으로 되어 있으므로 육의 고난과 마음(정신)으로 나눌 수 있지마는 이 둘은 통일체를 이루고 있으므로 서로 관련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육의 고난은 주로 의, 식, 주에 대한 위협을 비롯해서 이것을 얻기 위한 조건의 결핍, 예를 들면 신체건강의 상실, 사회 활동의 터전 또는 직업이 없어서 받는 것들일 것이다. 다음에 정신적 고통에는 육적 고난으로 일어나는 2차적인 것 이외에 일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주로 개인적으로 말하면 사람 답게 살려고 하는 의욕은 있으나, 그것이 실현되지 못하여 번민하는 것으로부터 또 사회적으로 불의의 세력에 억압되어 자유를 얻지 못하여 오는 고난 또는 가정과 사회의 불화에서 오는 고난들 등, 낱낱이 들 수 없으리만치 많다.
그런데, 여기에 고난 당하는 자는 복음을 인하여 고난 당하는 자를 말한다. 진리 증거에 반대가 있다. 무릇 경건하게 살고저 하는 자는 환난을 겸하여 받게 된다. 고난중에서도 원인이 분명한 것은 단념이라도 하렸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있다. 즉 성경에 나타난 욥의 고난이다. 욥은 하루 아침에 온 소유와 딸 일곱, 아들 셋을 다 잃었다. 자기의 몸에는 전신에 헌데가 나서 견디기 어려웠고 오직 하나의 반신인 아내까지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내 뱉지를 않나, 친한 친구 세사람은 와서 하나님의 인과의 보응을 들어 반드시 너의 잘못으로 이렇게 되었을 것인즉 회개하라고 냉혹한 비판을 계속하는 고난을 당했다. 욥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그 뜻을 몰라 더 괴로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욥에 대해서 칭찬하신 것이 동기가 되어 마귀가 하나님에게 참소하므로 욥을 믿는 나머지 사단의 고난에 일시 내어 맡겼다. 고난은 사단이 사람에게 입게한다.
나도 나의 과오와 무지로 복음병원에서 형제들이 불화의 상태에 이른 것을 경험했다. 형제가 마음이 상하여 풀지 못할 때에 윗사람으로서 고난은 적지 않은 것을 느꼈다. 가정에서 부모의 고난은 형제 불화임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때의 해결의 방법은 이 세상적인 수단과 방법은 무익함을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고통을 당하는 자들아, 와서 기도하라고 하나님은 부르신다. 고난은 우리의 힘으로는 해결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기도하라고 하신다. 기도하면 고난의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고난의 책임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깨닫게 된다. 결국 나는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나의 아버지, 또한 우리 아버지, 나의 고난은 결국 하나님의 뜻, 인류의 것임을 깨닫고 달게 받고 승리하게 된다.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반대로 기도가 들려졌을 때, 죄를 회개하여 용서함을 받았을 때, 전쟁이 그치고 화해가 성립되었을 때에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이런 때의 기도는 찬송으로 나타난다. 시와 찬미로 화답할 것이다. 나는 나의 민족의 고난을 붙잡고 내가 기도할 때에 “아버지에게는 아들을, 아들에게는 아버지를 생각하게 하고 내가 하나님 인 것을 알게 될 때에 해결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듣고 아멘 하였다.
2. 병든 자를 위한 기도
사람은 다 병자이다. 한번은 병들어 죽는다. 육은 죽어도 영혼은 영생한다. 육의 병의 대다수는 자기 몸에서 저항하는 힘이 생겨서 병변을 제거하고 회복하는 기전으로 자연히 낫는다. 이것은 과학자들은 자연법칙에 의한다고 하지마는 이 자연법칙을 운영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는 하나님의 법칙으로 낫는다 고 말 할 수 있다. 의사들은 그 자연법칙을 잘 알아 순종함으로써 건강을 회복케 하고 유지하도록 하는 지혜와 임무를 맡은 자들이다. 병중에는 특효약이라고 하는 것이 발견되어서 지금까지 낫지 못하던 병들이 낫게 되는 일이 있으나 이것도 또한 몸에서 낫는 힘과 기전이 이루어져서 낫는 것이다. 어떤 유명한 의사도 100% 진단을 바로 하거나 어떤 특효약도 100% 낫게 하는 것은 없다. 결국 몸에서 나을 수 있도록 되어서 낫는 것이어서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것이든지 설명되지 않는 것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뜻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야고보가 이 글을 쓸때에는 의사가 많지 않았고, 또 교회의 사명은 병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능력, 즉 믿음을 얻게 하는 데 있었으며 또 그것으로 병이 낫게 되는 것을 경험했던 것으로 믿어진다.
이제 나는 나의 경험을 들어 증거하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35년전의 일이다. 나의 둘째 딸 성용이는 출생후부터 몸이 약하고 체중이 정상보다 적고 때때로 기침과 설사를 자주하여 병이 많았다. 그 아이가 3세때에 기침이 심하고 가래가 끓고 열도 높이 오르고 숨이 차서 폐의 X-선 촬영을 하였더니 양측 폐야에 혼탁된 음영이 나타났다. 척 보아 급성 폐염이었다. 소아과 전문의사를 청해서 치료를 받았으나 효과가 나타나지를 않았다. 나는 그 때에 교회의 장로 방계성 목사님을 청해서 기도해달라고 했다. 방장로님은 병이 나아지기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서 아버지의 영광만이 나타나게 되기를 간구했다. 그 아이의 생명을 주님에게 온전히 부탁드리는 기도이었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 가셨다. 그 후 몇 시간이 안되어 아이는 숨차던 것이 나이지기 시작하고 열이 떨어지면서 땀이 나며 조금씩 나아져서 몇 일 안에 완치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자연 치유기전에 의해서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으나 믿음에서 말한다면 하나님의 뜻과 능력으로 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 아이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장하심을 믿는 믿음이 더 확실하게 자랐던 것이다. 나는 계속 기도하기를 소아과 의사에게 지혜를 주셔서 올바른 지도를 하게 해 달라고 하였고 또 소아과 선생의 지시를 따랐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의 믿음의 자세라고 할 수 있을는지? 그리스도께서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 주시기를 믿고 그의 영광이 나타나기 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믿음의 기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고 한 것은 주의 사랑으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라고 하신 것이다. 사랑은 옳은 방법을 찾아 낸다. 이것이 의학 발전의 철학이다.
3. 믿음의 기도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 라고 했다. 믿음의 기도라고 한 것은 주께서 저를 일으키 실 줄로 믿고 하는 기도이다. 주님은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십자가에 달려 속죄하여 주셨다. 병자를 일으키시고 죄인을 대속하시기 위하여 믿는 자를 통하여 일하시고 계신다. 병자를 일으키시려고 기도하도록 하신 것이다. 병자가 병이 나아서 일어나는 것 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일어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주님이 일으키실 때에는 육의 건강과 아울러 구속된 인간으로 일어나게 된다. 병의 원인은 여러가지이어서 반드시 다 죄의 결과라고는 할 수 없다 할 지라도 진리에 순응치 못한 결과로 되는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병자가 병이 완쾌되어 건강을 회복하는 일도 귀하지마는, 병상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떠났던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영접하는) 일은 더 근본적인 은혜이다. 왜냐하면 영혼이 건전하여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신하는 인격에 육의 건강이 필요하다. 육이 건강하고 영혼이 마귀에게 이끌릴 때, 쇠고랑이라도 제어 못할 정신병자와 같게 될까 두려운 것이다. 또 흔히는 몸이 건강하게 되면 예수를 믿겠다고 하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건강하게 되어도 예수를 믿지 않는다. 먼저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아 영생한다. 믿음의 기도는 예수님의 마음과 그의 뜻대로 대화하는 것이어서 병자를 예수에게로 인도하며, 예수님의 긍휼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병자는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바쳐드리고 그와 연합하여 평안을 누리게 된다. 이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병자는 주님이 일으켜 주시는 능력으로 구원된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그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해방되어 속죄의 은혜의 기쁨과 평안을 얻게 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죄를 십자가에서 다 처분해 주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까닭이다.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안에서 살게 되므로 죄의 기억도 없게 된다.
이와 같이 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자기 자신의 병과 죄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남의 병과 죄가 나의 것과 같이 느껴지고, 그의 생명을 사랑하게 되므로 서로 서로 죄를 고하고 용서함을 받아 완전한 인격자로 된다. 철저한 회개는 하나님 앞에 하는 일이어서 다시는 같은 죄를 범치 않는데 있는 것이다. 사람의 기도로 죄가 속해 진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기도로 병자의 마음이 감동하게 되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죄를 사하시는 원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에만 있는 것이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하는 이는 성령이시다. 성령은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시며, 또 믿는 자들의 말과 행실, 또는 기도로 예수님을 증거케하여 믿게 하신다. 사람은 예수님의 인격에 접하게 될 때 자기의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그리스도에게 자기를 바쳐 드리게 됨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4. 의인의 기도
의인의 기도는 곧 믿음의 기도이다. 사람은 아무도 자기의 행실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 다만 예수를 구주로 믿어 예수님의 의를 얻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부른다. 옛날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으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 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다. 즉 자연계가 순종했다. 의인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자연계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한 것처럼, 예수 안에서 사는 사람의 기도는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하게 되므로 자연계가 순종하는 것이 당연하다. 자연계의 이상은 이상 세계 곧 하늘 나라에서 사람에게 순응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그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소원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께, 자연과 사람은 서로 순응하여 대조화(perfect harmony)를 이루게 된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 믿음이 겨자씨 알 만한 것이 있으면, 이 산더로 명하여 저 바다에 옮기어지라고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렇게 이루어 지는 것은 그 명하는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하나님의 뜻에 의한 능력으로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 중에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신 기사가 있는데, 이것이 자연현상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는 말이다. 원래 자연 만물은 사람을 위하여 지어졌고, 자연현상도 사람의 뜻에 순종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창조의 원리이었다. 그런데 사람 (아담과 하와로 대표된)이 진리(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말미암아 자연계와 사람과의 부조화(disharmony)가 생겼다. 즉 사람이 이기적으로 되고,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렸으므로 자연계의 불순종이 나타났다. 이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인 의인은 예수안에서 순종하는 생활을 하며 기도하는 고로 그것이 곧 이루어 지며 능력으로 나타난다. 그것을 기도의 능력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열왕기 상 17장과 18장의 기사는 이 기도의 능력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즉 하나님을 믿은 엘리야는 자기의 의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였으므로 그의 기도와 말은 예언으로 되었고 기사와 이적이 나타났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의 아합왕과 그의 아내 이사벨의 회개를 바라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한 것이 곧 예언이 되어 이루어졌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했기 때문에 자연계가 순종했다.
그러나 아합과 이사벨은 종래 회개하지 않았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이 존중히 여기시는 자유의사를 가지고 믿지 않는 것이므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는 자들을 위하여는 기도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이 있다.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 (렘7:16, 11:14, 14:11). 곧 이것은 음행과 우상숭배를 회개치 않는 자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다. 아합은 엘리야가 보여준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이사벨이 가지고 들여온 바알 신을 섬기며,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다. 그러하다가 거짓말하는 자들에게 속아서 아람왕을 치려고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싸우다가 아람 왕의 군인의 화살을 맞아 죽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살아계신 여화와 하나님을 증거하고 자기의 사명을 다 하였다.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하여 기도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주가 되심을 증거하는 생활을 하며 기도하자. 내 가정과 직장에서, 그리고 내 나라와 온 세계에 평화가 임할 것이다. 나는 벌써 세계의 평화는 받은 줄 믿고 기도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성취하실 것이니까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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